기안84의 간단한 사과 후 다시 복귀하는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된 모양새다.
10%의 기회, 90%의 절망
서울 중구청은 '노 재팬' 깃발을 설치하다 반나절 만에 철거를 약속했다.
[기획] 국회는 어쩌다 혐오시설이 됐나? - (3)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 인터뷰
'언제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된다.
제일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 더 위험해질 게 별로 없는 나라다
'촛불시민'으로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종종 '촛불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나오지 못한 시민들'이라고 구분해서 썼다. 마음은 같았지만, 누군가는 광장에서 해방과 시민됨을 느꼈고, 누군가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우리나라의 출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이 아닙니다. 두 번에 걸쳐 볼록 올라온 봉우리 구간이 있어요. 첫 번째 봉우리는 이른바 '에코세대'인데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여서 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에코세대 직후에 두 번째 봉우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영역을 '낙타혹 세대'라고 부르는데요, 대략 1990~2000년생 사이로서 대략 50대 세대의 자녀들입니다. 현재 고등학생에서 20대 정도의 나이지요.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일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력 과잉인 것입니다. 낙타혹 세대가 직장을 구하고 나아가 집을 구하고 결혼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리도록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단기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신줏단지로 모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신들이 만든 비정규직법에 대해선 한마디 말이 없다. "2년 이상 필요한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규제했더니, 2년마다 해고하고 다른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으로 규제를 우회하고(회전문 효과) 규제가 없는 사내도급, 특수직 등 간접고용이 늘어난다(풍선효과)"는 유승민의 분석에 대해 두 사람도 동의하는가?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재벌·노동 공약이 유승민 후보만도 못하다"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비판을 반박해보라.
정규직이 가진 금융 접근의 용이함은 정규직이 가진 특권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특권이란 것은 누리는 사람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딱히 새로울 것도 없긴 하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노동자 중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여신이 필요한 사람 중 다수는 은행을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저축은행을 찾아가고 대부업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풍족한 은행여신과 한도를 누리는 정규직들은 여기에서 화살을 대부업체와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돌린다. '왜 그런 비싼 곳을 이용하느냐?'
어느 연도에서든 여성은 35세 이전에 최고임금을 경험합니다. 남성은 45세에서 55세 사이에 최고임금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야기하는 가장 큰 요인이 여성의 경력단절입니다. 교육과 결혼 전 경력이 역량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역량 투자 부족은 육아 이후 복귀하는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걸친 소득 격차는 더욱 심합니다. 월평균임금 50만원 차가 1년 동안 지속되면 600만 원입니다. 경력 초기를 제외하면 차이는 월 100만 원 이상으로 벌어집니다. 단순 계산해서 월 100만 원, 연간 1,200만 원 격차가 20년 동안 지속되면 약 2억 4,000만 원 차이가 납니다.
갑질의 거부는 바로 외부 대안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있으면 떠날 자유가 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많은 이는 갑질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이전과 90년대 이후를 비교할 때, 우리는 떠날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외부 대안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는 이가 직장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한다고 합시다. 이들은 과연 중소기업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정규직 직장을 가진 이는 비정규직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산업화'의 성과가 상위소득 1%에 집중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고착화시켰으며, '민주화'의 성과는 민주화를 주도했던 차상위 소득 10%에 집중되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양극화를 고착시켰음을 보여준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된 한국 민주주의의 실상은 한마디로, 상위소득 1% 산업화세력과 차상위 소득 10%의 상층노동이 좌우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층노동을 지배·약탈하면서 인간적 상처를 남기는 "과두제민주주의"로의 전락이다. "하층노동의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진보정당과 진보정치가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그 결실이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상위소득 10%에 속한 계층들에게 돌아가게 하거나 주로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들을 과대대표했음을 의미한다.
안희정은 법인세의 실체나 알고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을 주저하는 것인가? 모르고 그러는 것이라면 대통령이 되기에 식견이 한참 모자란 것이고, 알고도 그러는 것이라면 안희정이 노동 보다는 기업의 친구에 가깝기 때문일 것 같다. 노동에 대한 안희정의 태도도 나를 무섭게 한다. 안희정은 "사용자들이 만들어놓은 의제에 반대하기 위해 모이지 말자"라고 기염을 토했다.
연대임금제도의 대표적인 예는 최근 소개된 일본판 '동일노동 동일임금제'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저성장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아베 총리는 2015년에 '1억 총활약 사회'라는 목표아래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란 어젠다를 제시한 바 있다.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판 동일노동 동일임금제의 기원은 1951년 스웨덴 사민당이 성공적으로 시행하여 세계적으로 소개된 '연대임금제'에 있다.
그것은 지금과 달리 폭력 시위라고 한다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식의 논법에 대해 이렇게 묻고 싶다. 도대체 광화문에 170만이 넘게 모여 집회를 해도 부상자 한 명 연행자 한 명 없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경찰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의지를 표명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지 않는가? 집회의 자유가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 가장 눈부시게 빛난 지금, 집회의 힘이 국가 개혁의 물꼬를 연 지금, 물대포로 사람을 죽이는 진압이 있던 집회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한상균 위원장이 3년의 징역형으로 뒤집어쓰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불의(不義)이다.
가끔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과 같은 워딩을 보는데 아마 이렇게 쓰는 사람은 이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일단 대기업을 다닌다는 것에서 평범과는 아득히 멀어진다. 대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를 조금 넘는 수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중에서 40% 가량은 파견 등과 같은 비정규직이다. 일단 대기업 정규직이기만 해도 고용 근로자의 상위 12% 안에는 드는 셈이다. 게다가 이러한 근로조건으로 얻을 수 있는 금융 접근성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상위 0.1%, 1%의 소득집중도가 높고, 이들의 많은 소득이 주로 시장의 경쟁을 통해 얻는다. 반면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미국보다 높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재별부터 시작해 기업주와 임대소득자, 의사 등 전문직, 국회의원 등 성공한 정치인, 관료와 교수, 공기업과 금융기관 종사자, 대기업 정규직 등이 상위 10%에 해당될 것이다. 이들은 시장원리보다는 주로 불공정한 법과 제도, 과보호, 단합된 힘, 부정과 결탁 등을 통해 국민경제의 성과를 과다하게 가져간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해결이 매우 어렵다. 기여한 것보다 과다하게 가져가는 사람들의 수가 많고 여론 주도층이다.